지난 6일 제주 4중 추돌 사고 당시 구급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 현장에 뛰어든 의인은 23살의 제주대학교 학생이었다.

뒤늦게 연락이 닿은 이영호씨(23·제주대 국어교육과)가 그 주인공.

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교하던 중 사고를 목격했다. 사고가 발생한 오후 5시59분쯤 이씨는 제주대입구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쾅' 하는 굉음이 난 후 평화롭던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차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이씨는 그대로 오토바이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뛰어 갔다.

이씨가 도착했을 당시 버스 한 대는 약 3m 아래 임야로 추락해 90도로 뒤집힌 상태였다.

이씨는 "뛰어가보니 경상자들은 창문 등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며 "잔디밭에 앉아계신 분들을 도와드리고 정리될 때쯤 '버스 안에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버스 근처로 뛰어간 이씨와 시민들은 땅바닥과 버스 앞문 사이에 끼어있는 부상자 2명을 발견했다.

이씨는 "아마 버스 앞쪽에 타 있었거나 버스에 타려다 사고가 난 것 같았다"며 "출입구 쪽 밑으로 부상자들이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부상자 2명 중 한 명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지만, 나머지 한 명의 경우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위험한 상태였다.

오토바이를 몰아 장갑 등 안전장비를 차고 있던 이씨가 대표로 나서 널브러진 유리조각을 치우고 출입문을 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무게가 상당해서 도저히 들리지가 않더라"며 "그래도 소방대원들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실틈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문을 당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의식을 잃어가던 분이었다"며 "온몸이 끼어있는데 말씀도 없고, 움직여보라는 말에도 반응이 없었다. 맥도 안 뛰셔서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씨와 시민들의 분투 끝에 소방대원들이 도착하고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씨는 "버스 안쪽이 밖에선 보이지 않다 보니 미처 버스 아래 깔린 부상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구조대원들에게 여기 부상자 있다고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며 "다행히 금방 대원들이 오셔서 구조에 나서줬다"고 말했다.
 

'위험하니 이제 나가야 한다'는 소방대원 말을 듣고 현장을 빠져나오던 이씨는 버스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지갑, 신발, 가방 등 여러 소지품을 챙겨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바닥에 앉아있던 피해자들을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경찰의 신원파악을 도왔다.

집에 돌아와 살펴 보니 옷에 핏자국이 가득했을 만큼 참혹했던 현장이었다.

인터뷰 내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하던 이씨는 자꾸만 "미안하다"고 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 더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피해자들이 덜 다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실제로 이씨는 사고 직후 대학 내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하얀 신발 한 짝 못 찾아줘서 미안하고, 백팩 못 꺼내줘서 미안하다. 그리고 검은 가디건 입으신 분 제가 좀만 더 운동 잘하고, 생각 있었으면 구해드릴 수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신고했으면 됐을 텐데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적었다.

이씨는 "제가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더 빠르게 잘했다면 목숨을 살렸을 수도, 덜 다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현장을 떠나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컸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사고 직후 해당 커뮤니티에는 A씨 도움을 받았던 당사자가 나타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문에 깔려있던 부상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사고 났던 버스 맨 앞 1인 좌석에 탔고 사고 후 왼손과 머리카락이 끼어있었다"며 "밖으로 오른손이 나와 있었는데 어떤 분이 계속 괜찮다고 손잡아주면서 다독여줬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글에 이씨는 "문을 자꾸 들려고 했던 사람"이라며 "아프게 해서 미안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끝까지 있어야 했는데 소방관분께서 위험하다고 나오라고 하셔서 끝까지 문을 못 잡고 있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이씨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도 "저만 한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도와 한 일이고,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저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