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백록담을 꼭 올라가 보고 싶다고 해서 김포공항까지 태워다 줬는데..."

"3년을 기도해서 낳은 아들인데, 살 만큼 산 나와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제주도에 여행갔다가 교통사고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아들의 죽음을 제주 경찰로부터 통보받고 현지 병원으로 달려가 오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이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3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58명의 중·경상자를 낸 4월 6일 오후 제주시 아라동 5·16도로와 제주대 진입로 교차로에서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는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우연히 사고 발생 몇 십분 후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그 아수라의 현장을 직접 보았다. 크레인이 길밖으로 튕겨나간 버스를 끌어올리고, 도로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구조대의 응급조치를 받으면서 얼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날 밤 방송뉴스에서 CCTV에 찍힌 사고 순간이 방영되었다. 경찰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추정하는 대형 화물트럭이 정류소에 정차하려는 버스를 뒤에서 들이받으면서 트럭 2대와 버스 2대가 뒤죽박죽되는 4중 추돌사고였으니 아비규환의 사고 순간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 사고로 제주도의 도로교통 안전 문제가 여러 차원에서 제기되고 개선책이 논의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사고는 일어났지만 이 기회에 제주도 교통당국이 사고 수습에 들이는 노력의 몇배로 사고예방에 창의적 연구와 투자를 많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선의 아이디어 중 하나가 사고가 난 직선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바꾸어 제주대 사거리 주변의 차량진행 속도를 대폭 줄이자는 것이다.

필자는 교통전문가가 아니어서 함부로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제주도 외곽 도로에 많이 설치된 회전교차로가 자칫 잃기 쉬운 운전자의 속도감을 자제하게하는 등 도로교통 안전에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서 제주대 사거리도 회전교차시설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인 3월 29일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가 전국의 회전교차로 476곳의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은 게 관심을 끈다. 교차로 설치 전 3년치 평균 데이터와 설치 후 1년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교통사고가 24.7% 감소했고, 사상자 수는 33.1%가 줄어들었다. 특히 사망자는 76%, 중상자는 40%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회전교차로는 교통사고를 줄일 뿐 아니라 차량 통행 시간도 평균 5.3초 단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석결과를 보면 회전교차로가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큰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회전교차로는 중앙에 원형 교통섬(화단 등)을 만들어 그 주위를 자동차가 시계 반대반향으로 회전하면서 우회전, 직진, 좌회전, 유턴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된 교차로다. 사람들은 회전교차로에 접근할 때 속도를 크게 줄여야 하니 매우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 체계에 익숙해지면 사고를 예방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낭비도 줄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2007년까지만 해도 제주대 사거리에 회전교차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령 130년 높이 20미터나 되는 큰 소나무가 교통섬이 되어 차량이 그 주위를 돌게끔 된 회전교차로였다.

2005년 이 구간 5·16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하는 계획이 수립되면서 이 소나무 보존문제가 제기되었다. 건설당국이 소나무를 없애고 직진교차로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소나무를 없애면 안 된다는 여론에 밀려 나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듬해 소나무가 벌겋게 말라갔다. 누군가 소나무 등걸에 구멍을 뚫고 농약을 넣은 것이다. 결국 2007년 죽은 소나무는 제거되고 직진교차로가 만들어졌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5·16도로는 여러차례 개수되긴 했지만 위험한 도로다. 특히 이 도로의 제주대 입구 사거리 구간이 위험 요소가 더 많다. 해발 고도 800m의 성판악에서 계속되는 심한 'S자형' 커브를 타고 내려오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속도감 잃기 쉬운 곳인데다, 제주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량과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자동차 속력을 줄여줄 시설이 필요한 곳임은 보통 사람도 느낄 수 있다.

제주도 당국은 사고가 남긴 교훈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근본적인 교통안전 대책은 이번 사고 수습 차원에만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제주도는 도로 교통 불안 요인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코로나19로 좀 뜸해졌지만 사시사철 관광객이 하루 평균 3만명 이상 밀려오니 교통인구가 의외로 많다. 렌터카를 직접 운전하는 관광객과 현지 운전자들의 다른 운전 습관이 충돌하기 쉽다. 게다가 많은 도로가 높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산비탈이어서 제주대 사거리와 같이 교통불안 지점이 많은데도 과속은 심하다.

현지 주민을 위해서나 관광객을 위해서나 제주도 교통의 생명은 안전과 원활함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00명 인력의 자치경찰단이 있다. 자치경찰의 큰 기능 중 하나가 교통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제주 자치경찰에겐 특히 창의력과 현장이 중요해 보인다. 도로 현장의 경찰은 그 존재만으로도 차량 속력을 줄이게 하고 교통법규를 지키게 한다. 경찰도 이번 사고 교차로의 위험을 느꼈을 텐데 왜 고쳐지지 않았는지 아쉽다.

교통문화는 시민이 창조해야 한다. 제주도 주민들이 교통법규에 충실하고 여유를 갖고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는 일탈한 관광객을 타이르며 자동차 문화를 선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제주도의 교통 자체가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형성된 거대한 로터리가 아닌가. 곡선으로 된 제주도의 산세와 지형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선의 교통문화가 서서히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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