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제주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특유의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며 살아 왔다. 2021년 지금도 이 같은 공동체 정신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의인(義人)'이라고 부른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들은 하나같이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 의인들의 당시 활약상과 후일담을 들어본다.

'인명구조유공', '2020 바다의 의인'

제주 나라호 선장 이창민씨(57)의 배에는 해양경찰이 시상한 2개의 동판이 붙어있다.

해양사고 현장에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들어 소중한 목숨을 구해낸 증표다.

2019년 12월 11일 오후. 이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제주 세화항 인근 해상으로 문어 조업에 나선 참이었다. 어장을 서서히 끌어올리던 이씨 눈에 어딘가 이상한 어선 한 척이 포착됐다.

"민간해양구조대원으로 오래 활동해서 그런지 평소에도 사고 선박은 없는지 살펴보는 게 버릇인데 그 날 딱 인근 어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라고요."

위험을 직감한 이씨는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걷어올리던 그물을 순식간에 잘라내고 화재 어선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기관실 쪽에서 연기와 함께 불길까지 솟구치고 있었다.

당시 승선원 7명은 불길이 거세지기 시작하자 선미와 선수로 각각 흩어진 상황이었다.

2.5m의 높은 파고에도 화재 어선에 배를 가까이 댄 이씨는 어선 내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거세진 불길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불길이 잡히지 않자 선원들을 구조하기로 결정하고, 구조 인력이 도착하기 전 승선원 전원을 자신의 배로 옮겨 태우는 데 성공했다.

전원 구조 후에도 화재 어선에 적재된 기름에 불이 옮겨 붙어 불길이 재차 거세지는 등 아찔한 상황은 계속됐다.

자칫 새로 만든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배로 불길이 번질 수도 있었지만 이씨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씨는 "저도 처음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불이 난 배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순간이다보니 아무 생각이 안 났다"며 "선원 7명 모두 작은 화상 하나 없이 무사히 살려냈으니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육상에서 차가 고장나면 두고 가면 되지만, 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않나. 화재가 나면 모든 전자장비가 차단돼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어진다"며 "옆에서 자꾸 관심 있게 (다른 어선을) 쳐다봐야지 안 그러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바다 위, 특히 이씨가 주로 활동하는 구좌읍 세화리 일대 해상에서 이씨의 활약은 수년 전부터 계속돼왔다. 인근 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민간해양구조대 창단 멤버이기도 한 이씨에게 곧장 연락이 간다.

이씨는 2013년 8월 세화포구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간 임산부 A씨를 극적으로 구조해낸 장본인이다. 당시 튜브를 타고 있던 A씨는 해변에서 약 1㎞ 떨어진 해상까지 표류했다.

민관 합동 연락망을 통해 급파된 이씨는 자신의 어선을 이용해 A씨를 무사히 구조했다.

같은 해에는 술을 마시고 지인과 수영내기를 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실종된 취객을 구사일생으로 살려내기도 했다.

이씨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해양경찰청에서 선정하는 '바다의 의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보다 앞서서는 S-OIL과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최, 주관하는 시민영웅지킴이에 선정됐다.

이씨는 "저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어느 누구라도 먼저 가서 도움의 손길을 건넬 것"이라며 "꼭 대형사고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배 스크루에 어망이 걸려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 정신이 계속됐으면 한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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