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때 드러난 까만 바위돌 위에서 20대 여성 관광객들이 맨발을 구르고 웃고 떠들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근래 제주 바닷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용두암 등 유명 관광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음 명승지로 서둘러 이동하던 그들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행태다.

파도에 씻겨 말끔하면서도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돌의 까만 미감(美感), 그 위에 맨발로 섰을 때 느끼는 촉감은 국내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력이다. 수만년 전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다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 굳어진 검은 현무암 해변과 파란 수평선이 이들 MZ세대에겐 원시와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들은 알기나 할까. 그들이 발을 디디고 서있는 까만 바윗돌이 '바다 사막'의 황패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반세기 전 제주 해변의 색깔은 아주 달랐다. 썰물로 드러난 바윗돌은 온갖 갈색 해조류(海藻類)가 무성하게 덮고 있었고, 옅은 바닷속에는 모자반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최근 1950년대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에덴의 동쪽'을 다시 보았다. 20세기 영화의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은 이 영화의 첫 장면에 갈색 해초가 뒤덮인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해안 풍경을 넣었다. 반세기 전 제주 바닷가의 풍광이 이와 흡사했다.

그랬던 제주 바다가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제주도 해안 전체에 바다 사막화가 심각하다." 지난 11월 초 환경시민단체 '녹색연합'이 9월과 10월 두 달에 걸쳐 제주도 해안선 415㎞를 따라 97개 해안 마을 200곳을 면밀히 조사해서 갯녹음이 말기 상황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갯녹음은 기후변화나 인간활동에 의해 해조류가 죽어 소멸하는 현상을 말한다.

녹색연합은 갯녹음을 보다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사리 때의 조간대(潮間帶)의 조하대(潮下帶)에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조간대는 밀물 때 바닷물이 차오르고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경계 지대다. 또 조하대는 썰물 때도 물에 잠기는 조간대 바로 밑의 얕은 바다를 말한다. 이 두 곳은 해조류와 어패류 등 각종 바다 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조간대와 조하대의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미역 톳 감태 모자반 등 해조류가 지구온난화와 오염물질 유입에 의해 죽어 사라지면서, 해조류를 먹고 사는 물고기와 조개류 등 각종 해양 동물도 연쇄적으로 사라지는 '바다 사막화'가 심각하다는 것이 녹색연합 조사단의 분석이다. 조간대에서 해조류가 확인된 곳은 18개 마을뿐이었다고 하니, 해안선 82%가 바다 사막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천혜의 수산자원 보고로 회자되던 제주 바다의 먹이사슬이 끊어진 셈이다.

“현재 제주도 연안의 갯녹음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해안 경관 훼손은 물론 연안 생태계 균형이 깨지고 있다. 제주도는 정밀 조사를 통해 육상 오염원 통제와 기후변화 대응 및 섬의 환경 수용성을 고려한 근본적인 관리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이 조사에 참여한 녹색연합 윤상훈 전문위원의 대책 호소다.

제주 바다의 갯녹음 현상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30여 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됐다. 사진작가 서재철씨는 1960년대 말부터 50년간 제주 바다를 촬영한 토박이 관찰자다. 그는 말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간대 바위는 갈색 해초로 뒤덮였고 해초 사이에는 성게, 굴, 조개류가 많아 맨발로 다닐 수가 없었다. 당시 얕은 바다는 거의 모자반 숲이었는데 지금은 우도를 제외하면 모자반 숲을 볼 수 없다. 제주 바다는 죽었다."

이렇게 제주 바다의 갯녹음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갯녹음을 막아보려는 움직임은 미약하다. 우선 갯녹음 현상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그 원인을 소상히 탐구하는 노력이 없었다. 물질에 생계를 걸고 사는 해녀들 사이에 전복 소라 등 어패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불만은 그들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이는 관광과 농·축산업 주도의 산업구조에 따른 바다 생태계에 대한 경시의 결과다.

제주 해안의 갯녹음 현상의 원인은 기후변화와 오염원 배출 때문이라는 개괄적인 설명이 언론에 종종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기후변화에 의한 바다 수온 상승으로 일어나는 생태계 변화는 확연히 관측되고 있다. 제주 바다에만 살았던 자리돔과 감태가 울릉도 근해로 북상했다. 하지만 조간대와 조하대의 해조류가 사라지는 건 기후변화 요인보다는 인간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훨씬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제주 바다의 오염원은 도내 350여 곳의 광어양식장, 70만 제주도민과 연간 1500만 명의 관광객이 배출하는 쓰레기 침출수와 처리되지 않은 하수, 도내 감귤 및 축산농가 그리고 40여개 골프장 등 수없이 많다. 그러나 행정당국이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종류와 양을 종합적으로 조사해서 밝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제주도정은 해양생태계 편이 아니라 관광 농업 축산 등 제주도 주류산업 편이다. 예를 들면 광어양식장의 겨우 엄청난 바닷물을 수조에 끌어들였다가 바다로 내보내는데 양식장이 사용하는 사료, 소독약품, 세제의 양이 제대로 통계에 잡히는지 의문이다. 해양으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수집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청정환경정책을 표방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마디로 제주도의 강자들, 즉 도지사와 고위 공직자, 시장, 도의원들은 바다 편을 들지 않고 땅 편을 든다. 바다에는 표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갯녹음 현상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해가 얽혀 있어 제대로 균형잡힌 원인규명이나 대책수립이 흐지부지하다.

이번 녹색연합의 문제 제기는 시의성과 광범한 조사 규모로 볼 때 의미가 있다. 생태계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과 연결되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끌고 있는 세계사적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제주 바다를 생물다양성이 숨쉬는 곳으로 살려놓기 위해서는 환경보전에 대한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다 생태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인접한 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제주 태생으로 해조류 분야의 권위자인 김형근 교수(강릉원주대·해양생태학)는 "제주 바다생태계는 땅과 따로 떼어 생각하면 안 된다. 산림, 과수원, 경작지는 하천을 통해 바다와 연결되므로 땅과 바다를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별자치도이므로 환경도 특별하게 관리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안가에 바짝 붙여 건설한 해안 관광도로가 조간대 생태계에 주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하며 "도로가 바다 위를 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만으로도 장차 제주 바다 생태계가 얼마나 바뀔지 모른다. 거기에 지금처럼 과다한 오염원 배출이 더해진다면 '죽음의 바다'가 될 것이다. 제주 바다가 사막화한다면, 그 원인을 제공한 제주의 땅은 온전할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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