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제주의 한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50대 남성이 자신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잇단 증언에 궁지에 몰리는 모습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8일 오후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김모씨(55)에 대한 3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 5명에 대한 신문이 이뤄졌다. 증인 2명에 대한 신문은 증인들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 증인 3명에 대한 신문은 공개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증인 A씨는 김씨가 '리플리 증후군(허구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말을 일삼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을 앓고 있어 지난해 6월 방영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자백 취지의 발언을 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A씨는 "김씨의 거짓말은 살기 위해 또는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일 뿐 어떤 병적인 증상이 절대 아니다. 저한테 접근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면서 "이건 김씨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김씨는 남의 아픔을 잘 파고들고, 또 남 탓을 잘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A씨는 또 "김씨가 저한테는 사람을 직접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일에 자기가 연관돼 있다고 했고, 언젠가 자기가 직접 밝힐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증인 B씨의 경우 "김씨가 제주에서 한 변호사를 죽였다고 말한 사실을 2018년 김씨의 지인으로부터 똑똑히 들었다"면서 "그러다 지난해 6월 방송을 통해 사건을 접했고, 나름 확인 절차를 거쳐 범인이 김씨라고 판단해 경찰에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증인 B씨는 재판부가 "김씨의 지인은 증인에게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자 "그럼 제가 김씨를 어떻게 알겠느냐"며 "이 부분은 저와 김씨의 지인, 경찰관 간 3자 대면 자리에서도 이미 확인된 사안"이라고 힘줘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이 "김씨의 지인에게 대출 관련 일을 해 주면 수수료 명목으로 몇 천만원을 떼 주겠다고 한 사실이 있느냐"고 추궁하기도 했지만 증인 B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 저는 그런 비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조만간 또다시 특별기일을 잡아 김씨에 대한 재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의 한 폭력범죄단체 '유탁파'의 행동대장급이었던 김씨는 1999년 8~9월 사이 누군가로부터 현금 3000만원과 함께 '골치 아픈 일이 있어 이모씨(당시 44세·검사 출신 변호사)를 손 좀 봐줘야 겠다'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범행 결정권을 위임 받은 김씨는 2~3개월 간 동갑내기 조직원인 손모씨(2014년 사망)와 함께 차량으로 이씨를 미행하며 이씨의 동선을 파악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흉기를 고르는 등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모의했다.

결국 손씨는 1999년 11월5일 오전 3시15분부터 오후 6시20분 사이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의 복부와 가슴을 세 차례 찔러 B씨를 살해했다.

당초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나, 검찰은 김씨의 역할과 공범과의 관계, 범행 방법, 범행 도구, 자백 취지 인터뷰 등에 비춰 살인죄의 공동 정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이에 김씨 측은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에 전혀 가담한 바가 없고, 피고인이 '손 좀 봐줘야 겠다'는 지시를 받은 부분이 설령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살인이 아닌 상해를 공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밖에 리플리 증후군과 관련해서는 "정식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적은 없고 2016년 서울에 있을 당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알게 됐다"고 밝힌 상태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