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만나봣수다]는 우리의 이웃, 가족, 친구의 이야기를 뉴스1 제주본부가 찾아가 들어보는 미니 인터뷰입니다. 유명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그 누구든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만나봣수다는 '만나봤습니다'의 제주어입니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시 화북동에 사는 윤평식씨(61)는 베테랑 교도관이었다. 27살 때인 1989년부터 59살 때인 2021년까지 32년 간 제주교도소 등에서 근무해 온 그다.

윤씨의 공직생활은 오직 '교화'와 '봉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가석방 출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해 주거나 외국인 수용자들의 남모를 고충을 덜어주고, 교도소 교회당에서 전시를 여는 등 수용자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특히 힘을 쏟았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미취업 수용자가 늘어나자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노력 장려금 제도'를 고안한 것도 윤씨다. 교양서적을 필사하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이 제도는 2011년 제주교도소에 도입된 뒤 전국 교정기관 수범사례로 꼽힐 정도로 호평을 받으면서 10년 넘게 시행돼 왔다.

1992년 동료 20여 명과 '교정봉사회'를 결성했을 때는 제주보육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생일 축하 이벤트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했고, 2006년 동료 80여 명과 또 '한라교정봉사회'를 결성했을 때는 형편이 어려운 모범 수용자 또는 그 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 같은 윤씨의 공로는 2009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21회 아산상 자원봉사상 수상, 2013년 우수 인권 공무원 선정, 2016년 법무부 제34회 교정대상 성실상 수상 등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윤씨는 정년을 1년 앞둔 2021년 말 명예퇴직하면서 긴긴 공직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그는 운명처럼 거리로 나섰다.

퇴직하던 해 마침 2017년부터 몸담고 활동해 오던 대한적십자사 제주혈액원 제주다솜헌혈봉사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윤씨를 포함한 제주다솜헌혈봉사회 회원들은 제주시 연동에 있는 헌혈의집 신제주센터 앞에서부터 시작해 사려니숲길, 동문재래시장, 제주시민속오일시장 등으로 점차 활동 반경을 넓히며 제주 곳곳에서 길거리 헌혈 캠페인을 벌였다.

관광객이 많은 사려니숲길에서는 "제주는 물론 전국 어디에서나 헌혈을 할 수 있다"고 홍보했고, 주차난이 심한 동문재래시장에서는 "헌혈증을 제시하면 공영주차장 주차요금이 반값"이라고 홍보하며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윤씨는 지난해 직접 만든 헌혈 홍보 포스터를 등에 붙이고 마라톤 10㎞ 코스를 완주해 주변으로부터 큰 응원을 받기도 했다. 포스터에는 하트 그림(♥)과 함께 '헌혈은 자신의 건강과 이웃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헌혈에 참여하는 당신! 진정한 영웅입니다' 등의 문구를 담았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헌혈 참여 분위기가 크게 침체된 상황이었는데 회원들 모두 '그래도 다시 한 번 해 보자'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헌혈 횟수에 상관 없이 3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17명의 회원들이 오늘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윤씨의 첫 헌혈은 23살 때였다.

그는 "헌혈을 하면 예비군 훈련이 면제된다는 이야기에 처음 헌혈했던 것이 해마다 이어졌던 것 같다"고 다소 쑥쓰러워했다.

그러나 윤씨는 교도관이 된 뒤로 더 자주 헌혈했다.

분기에 한 번꼴로 교도소에 헌혈버스가 올 때마다 헌혈을 하다가, 한 수용자가 혈소판 감소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2~3주에 한 번씩은 꼭 성분헌혈을 했다던 그다.

그렇게 그는 지난 38년 간 254회에 걸쳐 헌혈을 했다. 명실상부 헌혈 유공자다.

윤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헌혈을 하고 있고, 헌혈증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주지역본부나 헌혈증이 필요한 지인 등에게 전달하고 있다"면서 "가족, 특히 아내의 이해와 응원이 없었다면 모두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당국자는 아니지만 헌혈을 많이 하는 청년층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정말 걱정이 많이 된다"고도 했다.

윤씨는 "헌혈 정년이 만 69세(전혈 기준)다. 청년들보다 인구가 많은 중장년들이 헌혈에 많이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저는 헌혈이 곧 건강검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으로 보다 많은 중장년들이 헌혈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정말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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